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두근두근 내 인생_김애란

☆북리뷰

by mibbm_soo 2021. 10. 3. 18:22

본문

01

 

p.50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p.96

나는 빨리 늙는 병에 걸렸지만, 세상 어디에도 늙음 자체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알았다. 노화도 병이라면, 그건 사람이 절대 고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그건 마치 죽음을 치료한단 말과 같은 거니까······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노화 뒤로 줄줄이 따라붙는 증상들을 밝혀내고, 장기가 상해가는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뿐이었다. 고작 열일곱 살밖에 안 먹었지만, 내가 이만큼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p.106

내 계획은 이랬다. 오래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는 것, 그리고 그걸 내 열여덟 번째 생일에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는 거였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우등상도 학사모도 아닌, '이야기'여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당분간 내게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p.112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어머니가 새삼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가 차분하게 어머니를 다독였다.

"이유 같은 건 없어. 미라야. 우리가 십년 내내 찾은 게 이유잖아. 아름이는 그냥 그렇게 된 거야. 의사들도 그랬잖아, 유전이 아니라고."

"아니야, 내가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렇지 않았을 거야."

"아니라고 몇 번 말해. 달리기 좀 했다고 애가 잘못되지는 않아. 우리 엄마는 뱃속에 내가 든지도 모르고 설날에 널뛰기도 했다더라. 그런데도 이렇게 튼튼한 자식을 낳았잖아."

"어머님은 몰랐겠지. 근데 나는 알고 뛴 거잖아. 열 바퀴, 스무 바퀴, 심장이 터질 때까지 돌았단 말이야. 밤새도록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고······"

(...)

'이 파일을 휴지 통해 버리시겠습니까?'

담담하고 불길한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러곤 한참을 망설이고, 또 주저하다······결국 '예'라는 단추를 누르고 말았다.

p.170

"오랫동안 치료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니?"

"그게······음, 혼자라는 생각요."

"그래?"

"아니요, 부모님이 저를 외롭게 두셨다는 뜻이 아니고, 아플 때는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요. 철저하게 혼자라는. 고통은 사랑만큼 쉽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더욱이 그게 육체적 고통이라면 그런 것 같아요."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p.351

바람은 그들 주위를 오랫동안 맴돌며 주저하다 사라졌다. 먼 훗날 그 자리로, 다시 올 걸 알고 그러는 듯했다. 쏴아아 - 큰 바람이 불자 수면 위로 잔물결이 일어났다. 그것은 무수한 잔주름을 드러내며 처량하게 웃는 누군가의 얼굴 같았다. 이윽고 한창 입 맞추고 있던 어머니가 고개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왜 그래?"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대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을 털어내려는 듯 부드럽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곤 다시 아버지와 입술을 포갰다. 바람은 '아무것도 아닐'리 없는 그들의 사연을 가늠하며, 여름의 미래를 예감하며, 이미 지나온 자리로 다시 돌아가 두 사람의 머리를 가만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에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바람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절을 계절이게 하려 딴 데로 떠날 차비를 했다.

(...)

바야흐로 진짜 여름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미쁨책방 이야기☆

앞으로의 삶에 대해 방황하는 두 명의 고등학생 남, 여가 마치 계절이 거스를 수 없게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듯 우연히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또 그렇게 하나의 생명 '아름이'를 출산하게 된다. 빨리 늙어가는 불치병에 걸린 아름이는 부모에게는 사랑이자 슬픔이다.

책을 읽고 작가는 어떠한 메세지를 전하려 하는지 순간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천천히 생각을 거듭하니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우리의 삶은 계절처럼 예측할 수 없다'는 거다. 인간은 때론 찰나의 감정과 행복을 좇아 현재의 외로움, 절망 등등을 탈피하려고 하는 단순한 동물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걸어가게 하는 과정의 연속임을 말이다.

산들바람과 돌풍이 언제 일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의 많은 사건들에 때론 우리는 설레임에 두근거리기도, 두려움에 두근거리기도 한다. 그 알 수없는 두근거림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인생을 함축해 책의 제목을 결정한건 아닐까?......

두서없이.

생각정리.

'☆북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미안_헤르만 헤세  (0) 2021.10.31
심리학카페_선안남  (0) 2021.10.11
결핍의 힘_최준영  (0) 2021.09.22
여자의 심리학_베르벨 바르데츠키  (0) 2021.06.27
오 헨리 단편선_오 헨리  (0) 2021.05.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