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93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돌이켜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은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나요?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잠에 취한 듯 말했다.
"어려웠어요. 꿈이 올 때까지는요."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요. 자신의 꿈을 발견해야 해요. 그러면 길은 한층 쉬어지죠. 하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꿈이란 없어요. 계속 새로운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떤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돼요."
p.222
내가 전장으로 갔을 때는 초겨울이었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예전에는 이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드물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이상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음을 알았다. 다만 그것은 개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이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상이었다.(...)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쳤다. 알은 이 세계고, 이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p.227
붕대를 감는 것은 몹시 아팠다.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가끔 열쇠를 발견해서 내 자신의 깊은 곳으로,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형상들이 졸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굽혀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이제 완전히 내 친구, 나의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은 모습이다.
[작품해설] 中 -이순학-
p.228~
<데미안>은 세계대전 이후 현대 독일 문학에서 '전쟁'과 '개인'의 관계를 치밀하게 제시한 선구적 작품이다.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에서, 무조건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파과해야 하는 현실과 자아의 관계에서 고민하는 청년들을 친절하고 치밀하게 안내한다. 개인주의적이고 철학적 사유가 관습화된 독일에서, 개인의 내면을 면밀히 탐구하지 않고서는 전쟁이라는 현실도 똑바로 이야기할 수 없다.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데미안은 달변가나 지식인처럼 '말뿐인'자아 성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 직접 부딪히며, 책임 의식을 갖고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내면의 성장을 말했다. 바로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의 이야기다.
악의 세계에서 살아온 두 도둑이, 죽기 직전 한 명은 회개하고 한 명은 회개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회개한 도둑이 칭찬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데미안은 생각이 달랐다. 악마의 세계에서 살아온 자가 천사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것은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 쪽을 택한 도둑이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비판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사고의 틀을 깨고자 했던 소재일 수 있다. 하지만 자아가 성장하려면 말뿐이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마지막 장 '종말의 시작'에서 전쟁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책임 의식을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현실에서 자기 존재를 책임지며 사는 것은 어쩌면 자아의 성장 정도와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의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소년기를 지나 어른으로 행해 가는 싱크레어는 베어트리체의 표적 다음에 어린 시절 고향집 현관 위 문장에 새겨진 새를 그렸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이 두 번째 발견을 싱클레어는 무작정 데미안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데미안에게서 답이 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애쓰는 싱클레어의 자아를 향한 길잡이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종말의 시작
(...)
피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든 아니든, 삶은 늘 우리에게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를 준다. 싱클에어의 자아도 마찬가지였다.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병사도, 에바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자아는 이렇게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제를 제시하며 우리 삶을 흔들어놓는다. 지식인 헤르만 헤세의 시선으로는 그 어떤 탐구도 전쟁의 잔인함가 쾌락과 혼란함을 설명할 수 없었다. 현실에 분명하게 존재했지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현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내면에서 이해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새가 알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듯이, 우리도 세계로 통하는 자신의 껍질을 부수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자신과 싸워 가는 길은 참 좁고 힘들지만, 그 길에 집중하며 인생의 돛대를 세워야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한 개인이 독립적으로 성장하려면 의존하고 있던 많은 것들에서 떠나야 한다. 따뜻한 가족, 부모님이 품, 도덕적인 신, 의지가 되는 친구, 기대고 싶은 사랑, 추구하고 싶은 이상향...... 하지만 이 많은 것들을 떠나 홀러 서려면, 자아의 내면적 탐구와 비판적 사고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전쟁처럼 자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소들은 자아의 이야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지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자아가 끊임없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방법 뿐이다.
우리는 사실 삶의 순간마다 주어지는 고민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래서 자아가 어떻게 해야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더 치열하게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내 세계에 조금만 위협이 와도 금방 죽을 것처럼 공포에 질리는 게 아니라, 새가 알을 개고 나오듯 사력을 다해 껍질을 부수고자 해서 극복해야 한다. 겁에 질려 평생 자아를 세상 밖으로 꺼내 보지도 않을 건가, 아니면 당당히 세계와 마주하겠는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그 선택에 <데미안>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수많은 '에밀싱클레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쁨책방 이야기☆
자신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인식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 숙명이다. 그 숙명의 끝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으로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삶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라는 변수가 존재하겠지만, 대게는 그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보다 나 다운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해 나감을 통해 그 결과는 행복에 보다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나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수의 의견에 동승하는 내가 아닌 정작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고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할 지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자신을 알아 간다는 것. 그것은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닌 수많은 경험과 사고를 통해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것은 나의 성장을 돕고 또한 주변의 성장을 돕는다. 그렇게 넓혀진 사고의 폭은 인생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알에서 깨어나오기 위해서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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