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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힘_최준영

☆북리뷰

by mibbm_soo 2021. 9.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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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p. 65

깊어가는 가을밤, 몸살감기에 신음하며 어머니를 추억한다. 여주 신륵사 정자에 앉아 찬찬히 여강을 바라볼 때면 강에서 슬며시 어머니가 올라오신다. 그리고 한마디 하신다. 내려놓으라고, 내려놓아서 편해지라고 말씀하신다. 나눌 수 있는 건 아낌없이 나누라고, 나누어서 마침내 세상과 하나가 되라고. 천년 고찰의 강변 정자에 서면 먼 옛날 노래한 나옹선사의 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칭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나옹선사, <청산은 나를 보고> 전문 -

p.200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 화가 풀 호건(Paul Horgan)의 말이다. "음악가라면 라파엘로의 그림을 연구해야 하며, 화가라면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공부해야 한다. 화가는 시를 그림으로 바꾸고 음악가는 그림에 음악성을 부여한다." 로베르트 슈만의 말이다. 「생각의 탄생」에 나오는 생각들이다. 오로지 예술만이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남을지 모른다. 예술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분야를 막론하고 감각을 교류하고, 공유한다. 예술, 즉 상상력만이 인간의 최후의 보루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 저자 김재인은 "결국 우리는 인공지능이 뺏을 수 없는 일,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작활동'이다. 창작활동의 요체가 바로 상상력이다. 모두가 예술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창작이 학습의 핵심 활동으로 여겨지고, 각 개인이 창작자가 되어보고 메이커가 되어보는 경험이 최대한 많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보일 수 도 있겠지만, 당장 교육과정에서 그런 과제를 던져주지 않으면 머지 않아 우리 아이들이 인공지능과 경쟁한 끝에 할 일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p.224

"폴이 피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피터보다 폴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된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더 귀하게 들리는 이유다. 결국 말하기와 듣기는 한 몸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은 그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의중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고받는 말의 내용이 곧 그들의 인격과 성격이다.

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본인과 험담의 대상자, 그 험담을 듣는 사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거늘 왜들 그리 서로를 죽이려 하는가.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라고 받아둔 선물이 산더미를 이룬다. 밝고 빛나는 삶을 살라고 불을 선물받았고, 둥지를 짓고 살라고 지구라는 아름다운 터전에 왔다. 소통하고 공감하라고 수도 없는 생각과 말과 글로 벼려왔다. 그 모든 고귀한 선물을 왜들 그리 엉망으로 탕진하는가. 왜들 그리 증오와 환멸의 삶을 살려고 하는가.

사람들을 붙잡고 현실의 문제들을 논의하라고 하면 끊임없이 부정의 말을 쏟아내지만, 정작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하면 머뭇거리기만 한다.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에서 지적하는 말이다. 부정의 말에는 익숙하지만, 긍정의 신호를 내는 데는 서툴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나의 말이 곧 나의 정체성이다. 나의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부르고, 나의 바름이 올바른 관계를 만든다. 특히나 사람의 관계는 말투로 시작된다. 기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배려의 말투부터 익혀야 한다.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 비단이 제아무리 곧다 한들 말같이 고운 것이 없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미쁨책방 이야기☆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저자의 별명에 걸맞게 이 책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를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고, 단호하면서도 인간애가 엿보이는 저자의 문장을 읽다보니 스스로 잊고 있었던 저 밑바닥의 본연의 내가 다시 싹을 피우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저런 핑계들과 원망이 뒤엉켜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했던 생각들이 다시 나를 채찍질하며 조금은 나를 내보이며 살 수 있도록 선한 바람을 일으켜준다.

그래! 말없이, 티없이, 나누며, 물같이, 바람같이.......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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