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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연_프랑수아즈 사강

☆북리뷰

by mibbm_soo 2021. 12. 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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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2

애도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먼저 그 가혹함, 일상적인 진부함이 있다. 그로 인해 당신은 처음에는 얼떨떨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지만 주변에 완전히 무심해진다. 가까운 이들에게든 먼 이들에게든 '근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방황이나 권태에 자신을 방치했다가 차츰차즘 애도에서 벗어나 삶으로 돌아온다. 달라진 나날들이 펼쳐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시간, 곧 그와 당신의 관계가 사라진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당신을 삶에 연결해 주는 것은 다른 어떤 존재, 다른 어떤 사건, 다른 어떤 행복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생겨나 삶 안에 자리 잡고, 엘뤼아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속하겠다는 힘겨운 욕망'뿐이다. 그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당신 자신에 대한 애도로, 기억에, 심지어 행복한 나날에 대한 기억에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 당신 자신에 대한 이 음울하고 지속적인 혐오는 무슨 고통을 만들어내는 기계처럼 당신으로 하여금 밤마다 이불 속에서 짐승처럼 신음하게 만들고, 낮이면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참게 만든다. 당신은 저항하고 싸운다. 그러다 보면 울적함이 무슨 눈가림이나 당연함처럼 당신을 도와준다. 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는데, 그런 사람을 막연하게 존중하는 분위기 덕분에 존중을 받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의 슬픔과 당신의 거절에 충분히 관심을 갖는다면, 당신의 거절을 지나치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상처 입은 가슴에도 피가 뛰고 있음을 안다면, 그 모든 것이 다시 아름다운 가을날 오후 테라스로 통하는 창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뭇잎이 당신의 뺨에 와닿을 때 과거가 따귀를 후려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가 갑자기 부인할 수 없게 되어 버린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 행복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p.287

<작품 해설 중에서>

(...)

이 소설은, 나이 차가 많은 연하 남자와 여주인공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나 「찬물 속 한 줄기 햇빛」을, 대사 속 풍자와 유머가 특히 돋보인다는 점에서는 「마음의 파수꾼」과 궤를 같이 한다. 원고가 타인의 '수정'을 거치긴 했지만 사강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도처에 포진해 있어서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사강의 향기가 흠뻑 어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프랑스 앵테르」). 인물의 독특한 성격, 재기 발랄한 대사, 톡 쏘는 듯한 경쾌한 풍자, 부르주아적 안락에 대한 경도와 경멸, 관습적인 모든 것에 대한 태생적인 자유로움, 욕망에 관한한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밀어붙임 같은 가볍지 않은 특징들이, "오픈카에 앉아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노르망디의 도로를 달리는"(<리브르 에브도>)클리셰를 용서하게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은 사강이 영화 제작을 염두에 쓰고 쓴 것인데, "제라르 드파르디외, 카롤 부케, 다니엘 오퇴유가 출연진으로 잡혀 있던"영화는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취소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로부터 뾰족한 얼굴형과 날카로운 눈빛을 물려받은" 사강의 외아들 드니 웨스토프가 산처럼 쌓인 종이 뭉치 속에서 찾아낸 원본과 시나리오를 토대로 문체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문장을 정돈해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작품의 원제는 'Les Quatre Coins du Coeur'로 직역하자면 '마음의 네 귀퉁이'가 있는데, 의논을 거쳐 제목을 '마음의 심연'으로 정했다.

여러 가지 논란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결국 연애 소설이다. 그리고 연애는, 사랑은 조건이나 물질, 심지어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 달린 거라고, 우리 자신도 몰랐던 그 심연에 다가가는 거라고 사강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 2021년 9월. 김난주-

☆미쁨책방 이야기☆

*등장인물: 앙리크레송/상드라(앙리크레송의 두번째 부인)/마리로르(앙리크레송의 며느리)/ 뤼도빅(마리로르의 남편이자 앙리크레송의 첫 번째 죽은 아내의 아들)/ 필립(마리로르의 남동생)/ 파니(마리로르의 엄마)/마르탱(앙리크레송의 집사)

책의 제목에 이끌려 고른 책인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줄거리가 펼쳐진다. 요즘 말로 하자면 소위 막장에 해당하는 줄거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그래서인지 작품 해설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란 표현이 있었던 듯하다.) 결국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중 '마음의 깊은 이끌림'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 느껴진다. 뤼도빅과 파니의 사랑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러한 이끌림이었으리라.

미완성작이기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지만 자유스러우면서도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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