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5
【나쁜 것을 나쁜 줄 알면서도 원하는 사람은 없다】
(...)
상대가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짐작하면 대화는 숨막히게 답답해진다. 그 순간 협력은 중단되고, 대화를 통해 진실에 도달할 가망은 희박해진다. 또 상대방이 내 말에서 가시를 느끼면서 방어적으로 나오기 쉽다. 설상가상으로, 방어적인 자세가 되면 믿음을 바꾸기도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대화에 더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따로 있다. 바로 나도 상대방의 말을 잘 안듣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꼭 추측해야겠다면, 하나만 하자. 상대방의 의도는 내 생각보다 더 좋으리라는 추측이다.(...)
1. 상대방이 내 의도를 의심할 때 굳이 반론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화의 초점을 '의도'가 아닌 '추론'으로 옮겨간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정말 오류에 빠지고 싶진 않거든요. 제 추론에 혹시 잘못이 있으면 짚어주세요."
2. 상대방의 의도가 나쁘다는 의심이 들 때는 궁금증을 푼다는 자세로 접근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 점을 꼭 짚어서 묻는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이야가 잘 안되네요. 제가 모르는 걸 뭔가 더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좀 설명해주실래요? 그럼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아요."
3. 답답함을 드러낸다.
이렇게 말해보자.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요. 말씀하시는 맥락을 좀 더 알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어떤 의도로 대화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대화의 의도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열린 질문이다. 상대방이 "의도라니 무슨 말이죠?"하고 물으면, "이 대화에서 바라시는 게 뭔가요? 대화에서 뭘 얻고 시프세요?"라고 한다.
4. 인터넷 분탕꾼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인터넷 용어로 '트롤'이라고도 불리는 인터넷 분탕꾼이란 악의적으로 못되게 구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대화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다. 이예 관심을 주지 말자. 꼬임에 말려들지 말자. 그런 사람은 계정을 차단하거나 '숨김'처리하자. 나의 짜증을 유발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과 대화해야 할 의무는 없다. 강압에 못 이겨 대화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대화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누가 귀찮게 요구한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란 모든 참여자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p.121
【표현개선 방법】
1. 협력적 표현을 쓴다.
'우리'라는 말은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 1963년 사회학자 유진 와인스틴과 폴 도이치버거가 펴낸 책에서 인용하면, "영어에서 '우리we'는 가장 유혹적인 단어로 꼽을 만하다. '우리'라는말을 쓰기만 해도 거의 자동으로 호혜성과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관계를 암시할 수 있다."
'너'라고 할 자리에 '우리'라고 하면 좋을 때도 많다. 이를테면 "넌 그걸 어떻게 알아?"보다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지?", "너 그 이야기 좀 더 해봐"보다는 "우리 그 이야기 좀 더 해볼까?"라고 하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일단 '우리'를 기본으로 하자.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거나 어색하면 주어를 굳이 밝히지 말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처럼 중립적으로 말하면 된다. 아래 항목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2. 중립적 표현을 쓴다.
상대방을 직접 가리키는 표현을 쓰면 사람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상대방을 방어 태세로 내몰 위험이 있다. 비인격화된 중립적 표현을 쓰자. '네 생각'이나 '네 말'대신 '그 생각'이나 '그 말'이라고 하자.
3. 사람보다는 그 사람의 생각과 믿음을 놓고 이야기 한다.
어떤 사람이 가진 믿음 중 일부 또는 하나만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어떤 딱지를 붙이지 않도록 특히 주의한다. "찰스는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것보다는 "찰스는 세금으로 전 국민 무상 의료를 실현하는게 옳다고 믿는다"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정확하고 공정하며 구체적이다. 또 "제니퍼는 사람이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죽건말건 신경 안 쓴다"라고 하는 것보다 "제니퍼는 찰스와 생각이 다르다"라고 하는 게 좋다.
4."난 생각이 달라"보다는 "난 수긍이 잘 안 되네"라고 한다.
상대방의 견해에 대놓고 반대하면 상대방이 적대적으로 나올 위험이 있다. 상대방의 견해에 마음은 열려 있지만, 아직 동의하지는 못한다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 레퍼포트 규칙 지키기
【비판에 나서기 전에】
게임이론가 나아톨 래퍼포트는 대화 중 반대나 비판을 제기하기 전에 지켜야 할 규칙을 제시한 바 있다. 오늘날 '래퍼포트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규칙은, 철학자 대니얼 데닛에 따르면 "상대방의 견해를 왜곡·과장하는 버릇을 고쳐주는 최고의 처방"이다. 데닛은 저서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에 래퍼포트 규칙을 간결하게 요약해놓았다. 대화를 잘하려면 다음의 규칙을 순서대로 따르자.
규칙1. 우선 상대방의 견해를 명쾌하고 정확하게 재정리해 상대에게서 "고마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나보다 더 잘 정리했네"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규칙2. 내가 동의하는 점을 조목조목 밝힌다. 특히 상대방의 견해가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게 한다.
규칙3. 상대에게서 배운 점을 모두 언급한다.
규칙4.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다음에야 한 마디라도 반박하거나 비판할 자격이 생긴다.
이 규칙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상대방의 견해를 명확하게 재정리하면 내가 상대방의 견해를 이해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했음을 알릴 수 있다. 또 '내가 동의하는 점을 조목조목 밝힌다'는 규칙을 지키면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부각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정치, 종교, 도덕 문제에서 상대방과 의견이 갈릴 때 중요한 점이기도 하다. 그래야 공동의 기반을 다지고 협력의 틀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합의점을 되돌아보고 라포르를 형성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배운 점을 언급하는 세 번째 규칙은 상호 학습과 존중의 자세를 권하는 효과가 있다. 내가 상대에게서 뭔가를 얻었음을 밝힘으로써 상대방의 모방을 유도할 수 있다. 교육 분야와 교정 분야에서는 이를 '친사회적 모델링'이라고 부른다. 래퍼포트 규칙은 상호 존중과 열린 자세의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p.180
【대화 중 하지말아야 할 행동】
1. 화를 화로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화를 내면 똑같이 맞대응하며 화를 터트리지 않는다. 특히 인신공격을 받았을 때 절대 되받아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면 모욕으로 응수하지 않는다.
2. 탓하지 않는다.
특히 격론 중에 상대방을 뭐라고 판단하거나, 악화된 상황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난 잘 얘기해보자는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대화가 딴 길로 빠진 것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행동이며, 퇴로를 만들어주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3. 상대방의 의도다 동기 또는 화난 원인을 나쁜 쪽으로 짐작하지 않는다.
화난 이유는 본인이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상대방이 화를 내는 대상은 나 또는 내가 한 말일 수도 있고, 대화의 전반적인 주제일 수도 있고, 자신이나 자신의 반응일 수도 있으며, 현재 대화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4. 안전에 위험을 느끼면 대화를 굳이 이어나가지 않는다.
필요하면 구실을 내세워 먼 곳으로 자리를 피한다.
p.186
【화를 다스리는 방법】
1.입을 꾹 다문다.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방을 비난하고 싶어도 참는다.(...) 상대방이 나를 조롱하든 모욕하든 욕설을 하든, 상대편의 공격에 똑같이 맞대응하지 않는다.
2. 소셜미디어는 피한다.
화났거나 불쾌한 상태에서는 '절대' 이메일이나 소셜미디어 댓글에 답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상의 글에는 꼭 답해야 할 의무가 없다. 쇼셜미디어에서 나를 모욕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줘야 할 의무는 조금도 없다.
3. 듣고 또 듣는다.
대화 분위기가 팽팽해지면 일단 듣는다. 다 들었으면 또 듣는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질문한다. 그리고 또 듣는다. 그런 다음 내 말을 한다.
4. 팽팽한 긴장감을 부인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긴장감과 압박감, 불안감 등 붑정적 감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답답함은 부인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5. '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심기가 불편한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고 표현하면 상대방은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대신 '답답함'이라는 말을 쓰고 대하가 답답하다는 점을 인정하자.
6. 속도를 늦춘다.
대화의 진행속도를 늦추면 긴장도 가라앉는 효과가 있다.
7. 팽팽한 대립의 순간에는 공감적 발언을 한다.
8. 안전이 최우선이다.
분노의 고성을 참고 듣지 말자. 위협이 느껴지면 자리를 피하자.
☆미쁨책방 이야기☆
생각보다 꽤나 어렵기도 하고 깊이 있는 책이였다. 대화의 문답법에 대한 기초부터 높은 수준의 과정까지 단계별로 다루었기에 언젠가(?)다시 한번 정독하며 스스로의 대화법을 돌아보고 현실에 적용해나가는 과정을 여러번 거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분야에서 적시적소에 사용하기에는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지만, 일상의 대화에서 우리가 범하고 있는 실수들 부터 다시 한번 짚어보면서 보다 건강하고 현명한 대화법을 점진적으로 배워나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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