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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_김지수

☆북리뷰

by mibbm_soo 2022. 1. 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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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p.111
"그렇지.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 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게 등용문이야.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고민해야 한다네. 다만, 잊지 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말야."

p.203
"비겁하고 잔인한 존재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경이로운 피조물이 또 인간이지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 인간은 어쩌면 지우개 달린 연필이야."
"지우개 달린 연필이라니요?"
"연필은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있고, 지우개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있잖아. 그런데 그게 어떻게 한 몸이 되어 지우개 달린 연필로 탄생했을까? 알고 보니 지우개 달린 연필은 한 형제가 낸 특허품이야. 그림 그리던 형이 밤낮 지우개를 잃어버려서 동생에게 찾아오라고 시키거든. 동생이 그러지 말고 지우개를 연필에 달아서 쓰지고 해. 그게 대박 나서 돈을 엄청 벌었어.
그런데 지우는 기능과 쓰는 기능을 한 몸뚱이에 달아놓은 그게 우리 인생이잖아. 비참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고 망각과 추억이 함께 있으니 말일세."

p.261
"가끔 저는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지적인 분으로 남고 싶으세요? 시적인 분으로 남고 싶으세요?"
"(미소 지으며) 보들레르 같은 사람은 죽기 전에 종탑이나 다락방이나 지상에서 한 치라도 높은 곳에 있고 싶다고 했네.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며, 찬란한 시 한 편을 남기고 싶다는 거지. 나도 다르지 않네. 지적인 것은 마음을 울리지 못해.
주변에 있는 사물, 바람, 햇빛, 신발, 단추, 머리카락······그런 사소한 것들이 저희들끼리 부딪쳐 나오는 진동이 파문을 일으킨다네. 지식은 울림을 주지 못해. 생명을 부딪쳤을 때 나는 파동을 남기고 싶은데 쉽지 않아."

p.274
"대적이 아니라 '경협(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군요."
"그렇지. 에너지enemy는 안돼. 라이벌rival이어야지. 라이벌의 어원이 리버river야. 강물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서로 사이가 나빠. 그런데도 같은 물을 먹잖아. 그 물이 마르고 독이 있으면 동네 사람이 다 죽으니, 미워도 협력을 해. 에너미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하지. 같이 있는 거야. 그게 디지로그 정신이야. 기업도 마찬가지라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는 에너미가 아니라 라이벌이야. 큰 조직은 작은 조직의 모험 정신을, 작은 조직은 큰 조직의 시스템을 배우며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해야 해.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아나? 인터페이스야. 위치로 보면 목!" (...)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그런 사람이 바로 21세기의 리더고 인재라네.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는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 소리 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p.293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당신의 인생은 촛불과 파도 사이에 있었군요. 정오의 분수가 왜 슬픈지 알겠습니다."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정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미쁨책방 이야기☆
이어령 작가님이 암투병을 하며 생이 마지막을 향하는 동안 저자 김지수님이 병원에서 작가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빌어 세상에 나온 책이다. 이전에는 이어령 작가님에 대한 사항을 전혀 알지 못한 나였지만, 1934년 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터뷰에는 그만의 소년스러움과 호기심, 재치가 묻어나며 또 논리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철학적인 고집이 드러나 보였다.
더불어 역사, 종교,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지식으로 그치지 않게, 자신만의 향기와 언어로 변신시키는 '촌철살인'의 힘이 느껴진다.
사회 속 역활에서든 SNS를 통해서든 때론 진정한 나보다 과대 포장된 나를 과시하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글을 쓰지 못했고 그러한 결핍이 계속 글을 쓰게했다는 선생님의 겸손한 말씀이 마음 속 깊이 와닿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면서도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애써온 삶을 지나 다시 자신만의 수평선으로 회귀 함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어쩌면 우리 모두가 목표로 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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