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45
신경증적 사랑의 또 하나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고 '투사적 매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은 집단, 민족 또는 종교와 매우 흡사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다슨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해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조하기에 빠쁜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하면 - 아주 흔히 있는 일이지만 - 사랑의 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한다.
만일 내가 오만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나는 상대방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고 나의 성격에 따라 그를 고치거나 처벌하려고 한다. 상대방도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는데 실패한다.
투사의 또 다른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어린아이들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투사는 흔히 자식에 대한 소망과 관련해서 일어난다. 이러한 경우, 자식들에 대한 소망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실존의 문제를 자식의 문제에 투사함으로써 결정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활에 의의가 없다고 느낄 때, 그는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의의를 느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어서나 자식들에 대해서나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실존의 문제는 각자에 의해 스스로의 힘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고 남이 대신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자식들로 하여금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인도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실패한다. 불행한 결혼을 해소하려고 할 때에도 자식들이 투사의 목적에 이용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버이들이 흔히 벌이는 논쟁은 화목한 가정이 주는 행복을 자식들에게서 빼앗지 않기 위해서는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하게 검토하면 '화목한 가정' 안에서 감도는 긴장과 불행의 분위기가 공공연한 결별보다도 자식들에게 더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공공연한 결별은 적어도 자식들에게, 인간은 용감한 결정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종결할 수 있음을 가르쳐줄 것이다.
여기서 자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오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사랑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는 환상이다. 어떠한 환경 밑에서든 고통과 슬픔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습관인 것처럼, 그들은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투쟁은 어느 쪽 당사자에게도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못하고 오직 서로를 파괴해버리는 것 같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이러한 생각에 대한 좋은 이유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와 같이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등'이 사실은 '진짜' 갈등을 회피하려는 노력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들이 말하는 갈등은 사소한 또는 피상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이고, 이러한 불일치는 본질적으로 명료해지거나 해결될 수 없다. 두 사람 사이의 진짜 갈등, 곧 은폐하거나 투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그들이 속해 있는 내면적 현실의 같은 차원에서 경험되는 갈등은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갈등은 명료해지고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며, 이러한 카타르시스로 말미암아 두 사람은 더 많은 지식과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위헤서 말한 바를 강조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서 사랑이 가능하다. 오직 이러한 '핵심적 경험'에만 인간의 진실이 있고 오직 여기에만 생기가 있고 오직 여기에만 사랑의 기반이 있다. 이와 같이 경험되는 사랑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그것을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곳이다. 거기에 조화, 갈등, 기쁨, 슬픔 중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다. 그것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곳이다. 거기에 조화, 갈등, 기쁨, 슬픔 중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부착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에센스 차원에서 경험하는 것이요, 각자가 자신들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 합일되는 것이다. 사랑의 현존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의 증거가 있을 뿐이다. 곧 관계의 깊이, 관련된 각자의 생기와 힘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인식하게 하는 열매이다.
p.172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모든 상황에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내가 객관성을 잃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나는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어떤 사람과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상과, 나의 흥미, 욕구, 공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나의 현실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객관성과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면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가는 길을 절반은 걸어온 셈이다. 우리는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객관성과 이성의 능력을 획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객관성을 유보하려고 하고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성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어느 경우에나 실패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의 능력은 자아도취나 어머니나 가족에 대한 근친상간적 애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사랑의 능력은 성장하는, 곧 세계와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생산적인 지향을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탈피, 탄생, 각성의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 조건으로서 한 가지 성질, 곧 '신앙'을 요구한다.
(...)
합리적 신앙은 근본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확신이 갖고 있는 확실성과 견고성이다. 신앙은 특별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퍼스낼리티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성격상의 특징이다.
p.176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은 약속할 줄 아는 능력의 조건이고, 니체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약속할 줄 아는 능력에 의해 규정될 수 있으므로, 신앙은 인간 실존의 한 조건이다. 사랑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곧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과 그 신뢰성에 대한 신앙이다.
(...)
신앙을 가지려면, '용기', 곧 위험을 무릅쓰는 능력, 고통과 실망조차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필요하다. 생활의 일차적 조건으로서 안정과 안정을 추구하는 자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 격리와 소유를 자신의 안전책으로 삼는 방어 기구에 칩거하는 자는 누구든 자기 자신을 죄수로 만들게 된다. 사랑받고 사랑하며녀 용기, 곧 어떤 가치를 궁극적 관심으로 판단하는 - 그리고 이러한 가치로 도약하고 이러한 가치에 모든 것을 거는 - 용기가 필요하다.
(...)
신앙과 용기의 훈련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첫 단계는 어디서 언제 신앙을 상실하는가에 주목하고, 신앙의 상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는 합리화를 간파하고, 어디서 우리가 비겁한 태도로 행동하는가, 또한 어떻게 비겁한 행동을 합리화하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배반하는 경우 언제나 약해지며, 우리가 약해지면 점점 더 새로운 배반을 하게 되고,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또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도, 비록 대체로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사랑하는 것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따라서 신앙을 거의 갖지 못한 자는 거의 사랑하지 못하다.
☆미쁨책방 이야기
얇은 책의 분량이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깊이 있고 또 여러번 되풀이 해 문장을 곱씹으면서 음미하고 이해해야하는 단락들이 많았다.
사랑을 하는 데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겠나?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사랑없이는 공허하고 외로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기에 어떻게 하면 사랑을 보다 현명하게 해 나갈 수 있을지를 훈련하고 배워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충만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러한 기술의 습득은 어쩌면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프롬이 제시하는 이론들이 모두 다 최선일 수는 없겠지만 사랑의 문제를 인간 실존의 문제와 함께 다루며 스스로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고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너무나 유익하고 유의미하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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