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5
꿈은 필요할까?
(...)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자신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마라! 고귀한 사람은 모두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라. (...) 고귀한 사람은 새로운 덕을 창조하려고 한다.(...) 그대 영혼의 영웅을 외면하지 마라. 그대 안의 가장 높은 소망을 거룩히 지켜라!
니체는 꿈과 희망을 '영혼의 영웅'이라고 칭하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 결코 이상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꿈이 니체가 말한 것과 같다면 그 꿈은 일생에 걸쳐 변할 수도 있겠죠. 단순히 장래희망으로 따진다 해도 초등학생 때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가 성인이 되어 공무원 시 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대통령은 큰 꿈이고 공무원은 작은 꿈일까요? 꿈에는 정해진 시기도, 크기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나아가 우리가 속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품는 모든 희망이 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꿈이든 꿀 자유가 보장될 때 우리와 우리 사회는 살아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 다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꿈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꿈은 당신에게 또 다른 개인에게 반드시 필요할까요?
p.47
나는 육체를 갖고 있는 것일까, 육체인 것일까?
(...)
데카르트는 결국 단 하나의 참된 명제를 찾아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코기토(cogito) 명제가 그것이죠. 이는 설령 악령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존재가 우리를 끊임없이 속이고 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속임을 당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가 여전히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우리가 2더하기 2를 5라고 믿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넓고 따뜻한 해변에 누워 있다는 생각이 망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이 사실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음을, 그로 인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죠. 코기토 명제는 인간의 이성을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는 '합리주의'에 확고한 논리성을 부여해줍니다. 데카르트가 프랑스 합리주의 철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이제 데카르트의 생각을 바탕으로 주어진 질문의 답을 찾아볼까요? 그 대답은 '정신이 육체를 갖고 있다'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리 뿐 우리가 실제라고 믿는 지금의 세상과 경험도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을 테고 말이죠.
자,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정신은 과연 이성적이기만 할까요? 우리의 육체는 대체 무엇일까요?
p.79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우리는 흔히 이렇게 착각합니다. 과학과 기술은 일종의 도구이며 이를 활용할 때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만큼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하이데거는 우리 시대를 이미 과학과 기술에 종속되고 이를 신격화한 상태, 즉 과학기술이 우상이 된 상태라고 분석합니다. 인간에게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탐욕이 팽배해 있는데 이 과정에 과학과 기술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물론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합니다.
그럼 이런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는 존재자, 즉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매 순간 시적인 태도로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시적인 태도'란 사물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스스로 그들의 진리를 드러내게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를 위해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존재자들의 지배자'가 아닌 '존재의 파수꾼'이 되라고 하는데요, 즉 존재자들 고유의 존재와 근원적 세계에 경이를 느끼며 이들의 수호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우리는 과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서울대학교 김영민 교수는 저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가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결말에 따라 그동안의 일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가 아닌 '죽음의 공포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p.257
노동은 욕구 충족 수단에 불과할까?
(...)
그렇다면 근대 이후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의미로 노동을 바라봅니다. '자아실현'과 '생계유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노동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관점을 살펴보죠. 데카르트는 자연의 적대적인 힘을 정복하고 이를 인간의 수단으로 바꿔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노동이 유일하다고 보았습니다. 후대 철학자인 헤겔 또한 노동은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며 해방의 도구라고 주장했죠. 다시 말해 이들은 노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반면 노동이 생계유지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9세기 철학자 니체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노동을 예찬하는 경향이 생긴 것은 노동자를 일의 노예로 만들려는 지배층의 계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이루어지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노동은 인간의 꿈과 사랑, 사고 등 본질적인 가치를 변질시키고 맙니다. 이는 결국 인간의 사색 능력을 마비시키고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 상실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죠.
이유야 어쨌든 산업화 이후 노동의 필요성은 점점 증가해왔습니다. 반면 분업화로 인해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생산 과정의 일부에 불과해졌죠. 그리고 이는 노동자를 노동에서 소외시키는 모순을 낳고 맙니다. 생산과정의 정체를 포괄하지 못하게 되니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충족하는 일 역시 요원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노동 자체에서는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노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노동의 대가를 목적으로 하는, 즉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죠.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수많은 단순노동이 기계화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장기화와 심화를 거듭하기만 하는 실업 문제는 수많은 취업 준비생이 '우선 합격'을 외치게 하고 결국 취업 이후에도 노동이 가치 있고 즐거운 것이기보다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차례입니다. 노동자로서 당신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나요? 당신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가요?
p.370
|에필로그|
(...)
우리는 모두가 철학의 종말,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철학이나 인문학의 가치가 이 시대에 이르러 소멸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과 실천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갖게 된 가치관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타인과 나누고 가정이나 회사 같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게 변화를 나누는 사람이 늘어날 때 우리 삶과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당신일 테고 말이죠.
☆미쁨책방 이야기
50가지의 질문을 통해 나를 그리고 세상을 보다 온전히 그리고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다. 에필로그에서의 저자의 말처럼 토론과 실천은 그리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표현하고 존중하며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결국 모두를 서서히 성장시킬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시작에 내가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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