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6
심리학의 프레임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바뀐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의학계와 정신의학계의 치료 속에서 우리는 분명 차별과 병리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린버그는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DSM>을 쓴 저자들조차 그 안에 어떤 유형의 고통이 담겨 있는지, 그와 같은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의사들의 흰 가운 안에 숨어 있다가 그 다음에 드러날 편견과 차별의 사례를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알아볼 수 있을까?
역사와 언어, 맥락, 권력은 누가 '정상'이고 누가 '이상하다'는 누명을 쓰는지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민감성, 특히 민감한 여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의료계와 과학계에서 지금껏 사용해온 표현으로 인해 민감성의 개념과 그에 대한 인식이 변질됐고 민감성은 질병으로 간주됐으며,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민감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새로 배울 때이다.
P.62
아론은 민감한 사람이 겪는 어려움과 민감성에 뒤따르는 오명을 일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매우 민감한 사람은 자신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방하려 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려 할 때(예컨대 밝은 불빛이나 시끄러운 음악을 참고 견딜 때) 지치고, 소진되고, 우울해지고, 두통이나 피로를 겪는다. "민감한 사람은 대다수 사람을 적당히 각성시키는 자극에도 지나치게 각성되기 때문이다." 민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빨리 지친다. 그렇지만 다른 여러 부류의 신경다양성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주어지는 재능 또한 엄청나다. 민감한 사람들은 심리학, 글쓰기, 미술, 음악에 재능이 있고 기업가로서의 자질도 훌륭하다. 이들의 신경계는 주변 환경에서 세부적인 사항을 더 잘 알아차리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각능력과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
아론의 민감성 검사에 표함된 다음 문항을 살펴보면 매우 민감한 사람의 주요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 감각적으로 강한 자극을 받으면 쉽게 피로해진다.
· 주변 환경에서 미묘한 것들을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 주위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 바쁘게 보낸 날에는 침대나 어둑한 방이나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물러나 자극을 차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 카페인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 밝은 불빛, 강한 냄새, 직물의 까칠한 감촉, 가까이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따위에 쉽게 피곤해진다.
· 내면이 풍요롭고 복잡하다.
· 큰 소리가 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 미술이나 음악 작품에 깊이 감동받는다.
· 가끔 신경이 지나치게 곤두서서 혼자 휴식을 취해야 한다.
· 양심적이다.
· 쉽사리 놀란다.
·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당황한다.
· 사람들이 물리적 환경에서 불편을 느낄 때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지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조명이나 앉는 자리를 바꾸는 등).
·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 실수하거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폭력적인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 주변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면 불쾌해진다.
· 배가 많이 고프면 몸 안에서 강한 반응이 일어나 집중이 안되고 기분이 나빠진다.
· 삶의 변화에 동요한다.
· 섬세하고 미묘한 향기, 맛, 소리, 미술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즐긴다.
· 한꺼번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 불쾌해진다.
· 생활을 정돈해서 언짢거나 버거운 상황을 피하는 것을 우선시 한다.
· 큰 소리나 어지러운 장면과 같은 강한 자극이 신경 쓰인다.
· 실력을 겨루거나 남이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긴장이 되고 떨려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P.200
민감성이 높은 내담자를 대하는 요령을 묻자 콜은 실제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 모두를 언급했다. "내담자의 만감성을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 사회는 민감성을 병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고,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시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런 경향을 상쇄하려면 누군가 반드시 민감성에 깃든 긍정성과 지혜를 되돌아보도록 도와줘야 해요. 저는 내담자를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고, 주로 흥미와 동기를 이끌어내는 개방형 질문을 하면서 내담자 개개인에게 맞춰 치료를 진행해요." 그는 또 내담자가 자신에게 맞는 약물치료나 정신건강 서비스를 찾도록 돕는다. 또한 너무 많은 내담자가 순식간에 환자 취급을 당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의료계 종사자 교육과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
P.274
앞서 말했듯 나는 심리치료사가 아니다. 기업의 임원도 아니다. 하지만 신경다양인을 실패로 내모는 업무 환경을 직접 경험해본 당사자로서 이제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해보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다.
·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신경다양성을 이해하고 환영하며 포용하고 배려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 직원들이 자신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일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모든 직원에게 신경다양성의 언어와 틀을 교육한다. 먼저 근무시간에서 한 시간을 할애해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그 사례를 제시하면서 신경다양성의 중요성과 관련성, 의미를 강조한다.
· 창의적 사고가 중요하고 직선적 사고는 그다지 필요치 않은 부서, 직책, 업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신경다양성을 지닌 직원들이 신경전형적 기대에 부합하고자 애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 직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조용한, 사적인, 개방된, 여럿이 공유하는) 물리적 공간을 만든다.
· 되도록 자연 친화적인근무 환경을 조성한다. 신경다양인은 신경계를 조절하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기 때문에 근무 환경에 정원이나 테라스, 빛이 잘 드는 창문이 있거나 사무실 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틀을 깨는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누구든 소중한 직원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근무 환경 때문에 불필요하게 두통이나 다른 불편을 겪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 정신건강, 번아웃, 수면, 커뮤니케이션, 경계 설정 등 조직 생활과 관련된 요령과 기법에 대한 소규모 모임을 지속적이고 규칙적으로 실시한다. 직장에는 사회적 편견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영향력이 있고, 이러한 변화는 가정과 공동체를 넘어 더 너른 사회로 뻗어나간다.
☆미쁨책방 이야기☆
보통 성격이 좋다는 말은 타인의 말을 잘 수용하고 민감할 수 있는 말과 상황을 비교적 잘 넘김으로서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반면에 성격이 예민하다는 것은 그(혹은 그녀)를 맞추기 어렵고, 때론 요구사항이나 기준이 까다로워 주변사람이 불편을 겪는 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신경다양인이 가진 다양한 감정은 때론 타인의 고통을 더 깊이 공감하고, 오감을 잘 활용하여 더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유용한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흔히 신경전형인이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하고 사는 그들이 있어 세상은 보다 정교하게 발전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신경다양인이며 그들이 삶에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스스로 드러내야 신경전형인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신경다양인 역시 신경전형인에게 어떤 문제나 고민을 안겨주는지를 듣고 소통하며 서로가 가진 차이점을 알아나가다 보면 보다 발전적인 조직과 사회로의 성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알아야만 한다.
하루 10분 인문학_이준형.지일주 (0) | 2022.08.15 |
---|---|
더 해빙(The Having)_이서윤·홍주연 (0) | 2022.06.19 |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_김호 (0) | 2022.05.07 |
돈의 속성_김승호 (0) | 2022.04.23 |
노후를 위해 집을 이용하라_백원기 (0) | 2022.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