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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_현새로

☆북리뷰

by mibbm_soo 2020. 11. 2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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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엽서 대신 '인증 샷'을 찍어 안부를 전하는 시대다.

그래서 일까? 어쩌다 우체통을 마주치면 안쓰럽다.

'우리와 놀아주던 돌(우체통)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것처럼 낯설어서.

머릿속을 떠돌던 말들이 활자가 되어 편지로 나타날 때 느끼던

그 잔잔한 감동을 다시 느껴 보지 못하리라는 안타까움에.

생각해보니 우체통을 언제 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물거리는 내 기억과는 달리 반겨주는이 없이도 어디선가 빨간 빛깔 뽐내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벌써 20여년 전의 친구들과 주고 받던 편지를 난 아직 몇 통 간직하고 있다.

(손으로 쓴)편지라는 것은 그 시간을 다시금 꺼내어 주고, 그 때의 마음을 추억하게 만든다.

20여년이 지난 후 지금의 내 기록은 그때의 손 편지처럼 의미 있게 읽혀질 수 있을까?

수 많은 세월 동안 컴퓨터에 기록하고 지우고를 반복했던 나의 시간은 이제 어디에서 추억할 수 있을까?

가끔씩은 그때의 손 편지가 그립다.

모든 것이 순수했던 그 시절처럼 살고 싶다.


p. 90

입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그 시간이 꼭 '밤눈 내리는 세상' 같았고, 하늘도 '비극적으로 기울어' 있는 것만 같았다. 반면에 대학은 '모든 싸움의 끝인 벌판'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싸움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는 벌판이었다. 뜨거운 청춘의 진정한 햇빛사냥이 그때 비로소 시작된 것이었다.

그닥 입시 경쟁을 치열하게 한 사람은 아닌 나지만, 20대가 되면 모든 세상이 내 것일거라 믿었다.

40대가 막 지난 지금은 내 마음의 20대와 세상이 보는40대의 기준에 나를 맞추어야만 하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존재한다.

나는 그저 20대의 세상에 살고 싶은 40대일 뿐인데......

경쟁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통해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는 일.

참 이상적인 말이지만, 현실은 경쟁적이고 참으로 이성적이다.

때론 그 칼날에 베이고,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만 하는 나이.

이제 나는 그런 나이이다.


p.102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정현종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사랑을 하고 상대에게 익숙해지면서, 때론 상대와의 일정한 거리가 더욱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기적이게도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일들. 외면하고 싶은 감정을 마주하게 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이 시의 주인공 남자는 한 여자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음이 깊이 전해졌다.

신경쓰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신경이 쓰여 미칠 것 같으면서도, 그 여자의 울음을 듣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일.

사랑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수만가지의 사건과 감정이 그들을 애워싸고 있음을.

그 깊이 있는 울림이 전해진다.


p.122

호수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쓸쓸하고 때론 고독하며, 불안하고, 또 희망을 품고, 슬프고, 체념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는 시 같았다.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의 이면에는 거센 빗방울과, 바람과, 차가운 눈보라가 지나온 보이지 않는 흔적이 있다.

태연한 척하며 흐르는 세월 속 우리의 모습처럼


p.185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

돌이켜 보면 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사랑의 기쁨이 아니라 '슬픔의 힘'이었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이다. 이기적이고 좁은 내 자아를 둥글고 넓게 만들어 준 것은 슬픔 뒤에 오는 깨달음이었다. 슬픔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이 세상도 그렇다. 슬픔을 알고 난 뒤에 변한다. 행복은 슬픔이라는 나무에 열리는 다디단 열매다. 슬픔이라는 고통의 나무가 없다면 빛깔 고운 행복의 열매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슬픔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슬픔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고, 관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슬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나를 괴롭히는 관계, 불행하게 만드는 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때론 다시 가시덤불에 빠져 길을 잃더라도 담담한 척 그 곳을 벗어나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은 그렇게 슬픔을 통해 얻어진다.

그렇게 조금씩 빛깔 고운 열매를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미쁨책방 이야기

작가의 손때와 추억 그리고 시간이 간직된 사진. 그리고 시. 그리고 생각.

이 조화로운 삶의 이야기가 나의 삶과도 또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그래서 더 공감하며 함께 여행하는 마음으로 가볍고도 진중하게 읽혀진다.

나 역시 작가와 함께 내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기록하며 평온하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또 평온하게 내일 하루를 시작해보리라는 다짐과 설렘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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