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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_어니스트 헤밍웨이

☆북리뷰

by mibbm_soo 2020. 12. 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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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나는 낚싯줄을 정확하게 내리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운이 없는 편인 게지.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지도 몰랐다. 매일매일은 새로운 날이다. 운이 따르는 날이면 더 좋은 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정신을 바짝 차릴 테다. 행운이 찾아올 때는 언제나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행운들을 우리는 행운인지 모르고 스쳐지나 보냈는가.

상황 속에 존재했던 많은 불평과 불만 속에서 어쩌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던 행운을 우리는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운을 알아차리는 그 때 행운은 내 곁에 머물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p.122

물고기가 너무 심하게 상처를 입는 바람에 노인은 더 이상 물고기와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반쪽 물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물고기였던 물고기야. 내가 너무 멀리 나온 게 한탄스럽구나. 내가 우리 둘 모두를 망쳤다. 하지만 우리 함께 많은 상어를 죽이거나 박살 내지 않았느냐? 물고기야, 넌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을 죽였니? 네 머리에 달린 그 창 같은 주둥이도 다 이유가 있어서 달려 있는 게 아니니?(...) 그나저나······. 밤중에 상어들이 달려들면 어찌한다?

"싸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짧은 대목이지만 이 속에서 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승리를 위해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속에서 상처입는 누군가가 있고, 그로인한 죄책감과 고독함이 있으며, 패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불굴의 의지와 욕망.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본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p.124

노인이 말했다.

"행운을 파는 곳이 있다면 조금 사고 싶군."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무엇으로 산단 말인가? 잃어버린 작살과 부러진 칼과 망가진 두 손뿐인데, 무엇으로 산단 말인가. 노인이 자신에게 물었다.

"그래도 살 수 있을지 몰라. 바다에서 84일이란 값을 치르며 행운을 사려 했지. 그리고 거의 살 수도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행운이란 여러 모습으로 찾아온다. 아무도 그걸 알아볼 재간이 없어. 노인이 생각했다. 그래도 어떤 행운이든 조금이라도 얻고 싶군.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말이지. 아······. 아바나의 붉은 빛이 보이면 좋으련만.

 

역경을 딛고 손에 쥔 무언가는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 공허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묵묵히 인간을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이 아닐까······.

 

 

p.128

바람만큼은 어쨌든 내 편이었지. 노인이 생각했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노인이 덧붙였다. 친구도 있고 저 넓은 바다도 친구지. 그리고 침대도. 그래, 침대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된다. 노인이 생각했다. 침대에 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싸움에 진 뒤에는 침대에 눕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 노인이 생각했다. 침대가 얼마나 편한 곳인지를 나는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진 것이지? 노인이 생각했다.

"그 무엇도 아니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다."

 

때론 나의 욕심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상황 속에서의 힘듦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상황 역시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 아닌가. 걱정할 것 없다. 언제든 선택은 다시 할 수 있으며, 내가 돌아와 쉴 공간과 마음나눌 가족이 있지 않은가. 너무 멀리 나갔다면 돌아오면 된다. 언제든.

 

 

p.137

역자해설(-옮긴이 민예령-)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

미국 문학사에 헤밍웨이가 운명적인 것처럼 「노인과 바다」역시 운명적으로 탄생했다. 헤밍웨이는 삶을 살아가며 인간의 나약함과 숭고함 그리고 인간의 약점과 장점, 한계와 가능성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좇아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욕심을 냈는지, 또 그 욕심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지를 보아온 것이다. 헤밍웨이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은 혼란과 격변이 가득했다. 일명 '잃어버린 세대'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던 헤밍웨이가 가장 찾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존재, 그 본질이었다. 그리하여 헤밍웨이는 지독하게도 인간적인 산티아고를 창조해냈다.

산티아고는 인간이기에 늙고 나약하며 한계에 부딪치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이기에 용감하고 강인하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을 이뤄 냈다. 산티아고는 인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바다처럼 깊었던 헤밍웨이의 인간에 대한 고찰과 통찰은 궁긍적으로 인간에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발전했다. 「노인과 바다」속에서 산티아고는 인간의 본질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큰 사랑까지도 보여 주었다. 독자들이 첫번째로 접하는 그의 사랑은 마놀린이라는 소년을 향한 것이다.(...)

더불어 산티아고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피조물에 대해 연민과 숭고함을 느꼈다. 거대한 바다는 노인에게 삶의 터전이고 수많은 생명과 신비를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였다. 그는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해와 달로 시간을 재며, 물결로 바다의 깊이를 가능하고, 나침반 대신 별빛과 바람으로 항로와 방향을 잡았다. 또한 태양은 산티아고에게 밝음과 새로운 나날을 주었다. 산티아고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감사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산티아고의 사랑은 자연의 모든 피조물에게 확대되었다.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 심지어 한때 자신과 적이었던 물고기마저도 어느새 그의 사랑하는 아우가 되었다.

 

인내와 투혼으로 지켜 낸 삶에 대한 의지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사뭇 단순하다. 대어를 잡겠다며 '무모한 도전'을 나간 노인이 힘겹게 물고기를 잡지만 고기는 결국 상어들에게 모두 뜯겨 버리고 머리와 꼬리만 남긴 채 겨우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이 현대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걸까?

앞서 말한 인간과 자연과 삶에 대한 노인의 사랑은 그런 것들을 '견디어 내는'극기주의로 발전했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산티아고처럼 '한 번만,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자.'며 행동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산티아고는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우직하게 노를 저었고, 물고기를 끌었고, 상어 떼와 맞서 싸웠다. 바다와 맞서 싸우는 노인을 지켜보는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산티아고의 불굴의 의지'에 세뇌당하고 만다.

삶은 절대 녹록치 않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수만 번즘 일어나고,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것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경우가 수천 번쯤 생기고, 죽을 만큼 노력해 얻은 나의 소중한 무언가가 일순간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둔갑해 버리는 일도 수백 번쯤은 생긴다. 늙고 운 없는 산티아고가 고기를 잡는 것과 그 고기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 내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 내는 일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산티아고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본문p.109) 우리는 위대한 자연 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 이기에 패배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소년이 말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노인은 대답했다. 우리는 믿음이 있지 않느냐고.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믿음, 자연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 승리하고자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지켜 냈고 그 과정을 지켜 냈다면 그것은 패배가 아닌 것이다. 산티아고는 그렇게 우리에게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노인과 바다」의 서사기법과 지역성

「노인과 바다」는 주제와 시대적 가치 외에도 다른 다양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특유의 서사기법은 작품의 주제를 전달함에 있어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헤밍웨이는 모더니즘 특유의 간단명료하며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 문체로 요약될 수 있다. 강건체(*힘 있고 활기찬 문체.)와 간결체(*많은 내용을 압축하고 생략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문체.), 그리고 건조제(*화려한 수식 없이 사실만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문체.)가 그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세상은「노인과 바다」속 헤밍웨이 문체를 '강력하며 간결한, 어떠한 경지에 오른 문체를 가진 서술의 예술이다.'라고 극찬했다.(...)이러한 헤밍웨이의 문체는 노인 산티아고의 단순하면서도 강인한 삶과 정신세계를 나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흔히 헤밍웨이의 문체를 '빙산 문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빙산 문체'는 단순화법, 생략화법 등을 사용해 최대한 억제하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도록 수련된 문체이다. 8분의 1은 물 위에 드러나 있고 8분의 7은 물속에 가춰져 있는 빙산처럼, 일부만을 표현하고 많은 부분을 표현하지 않음으로 하여 말하지 않는 것들, 표현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심연 속 깊이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서술을 억제함으로써 의미의 전달이 더욱 확실하고 빨라지는 헤밍웨이의 이 문체는 억제와 침묵을 통해 심도 있는, 그리고 다면적인 해석을 가능케 했다. 더불어 짧은 문장과 그 문장들의 촘촘한 연결은 이야기의 진행을 빠르고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이 항해와 인내에 대한 이야기는 큰 파도를 넘나드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손에 잡힐 듯 생생한 지역성 또한「노인과 바다」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가치 중 하나이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에 오랫동안 살았다. 바다낚시는 헤밍웨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취미이기도 했다. 이 뜨겁고 바다냄새가 진하게 풍기며 수많은 어부들의 삶의 터전인 도시는 「노인과 바다」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미쁨책방 이야기☆

작품에 대한 해설은 역자해설에 너무나 자세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기에 책을 읽고 남은 여운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피고 마음에 배가시켜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줄거리가 비교적 단순하고 짧은 작품이지만 노인과 함께 바다에서 대어를 낚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마치 함께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생동감과 동질감이 전해지며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 만들어준다.

비록 꿈에 그리던 대어는 집에 돌아올 때쯤 이미 상어들에게 뜯기어 거의 사라졌지만, 그 여정속에서는 깨달음이 분명 존재한다. 소년에 대한 애정, 자연에 대한 사랑, 쉴 수 있는 침대. 어쩌면 그것이 존재하기에 노인은 먼 바다로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것이 그대로 존재했기에 이 스토리는 이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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