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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_조지 오웰

☆북리뷰

by mibbm_soo 2021. 1. 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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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세기 영미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 조지 오웰의 풍자 우화를 통한 사회 비판을 담은 기념비적 소설. 그는 『동물농장』에서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혁명을 이루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 동물 공동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통해 구소련의 역사를 재현하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여러 등장인물 중 인간 주인인 존즈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를,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나폴레옹에게 축출당하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 또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학살’과 ‘외양간 전투’ 역시 각기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과 연합군 침공 등으로 연결된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어떻게 변질되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히 그린 이 우화는 특정한 시대에만 한정되어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 때부터 벌어진 ‘독재’를 함축적인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그려내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조지 오웰이 지닌 사회비판적 문학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알라딘 제공]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p.78

오늘 있었던 공포와 살육의 장면들은 늙은 메이저가 그들에게 반란을 사주했던 그날 밤 그들이 꿈꾸고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 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그런데 그 사회 대신 찾아온 것은, 아무도 자기 생각을 감히 꺼내놓지 못하고 사나운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물들이 무서운 죄를 자백한 다음 갈가리 찢겨죽는 꼴을 보아야 하는 사회였다. 왜 그렇게 된 건지 그녀로선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반란이나 불복종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과거 존즈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지금이 훨씬 낫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고 인간들이 되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이 동물농장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고 나폴레옹의 영도를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해서 농장의 동물들이 바랐던 것은 오늘 같은 날이 아니었고 허리가 휘게 일한 것도 이런 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풍차를 세우고 존즈의 총 앞에 대든 것은 이런 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표현할 말을 찾지는 못했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맴도는 건 그런 생각들이었다.

p.147~

[작품 해설: 동물농장의 세계]

일단 역사적 정치풍자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동물농장」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니콜라스 2세의 차르 정권을 뒤엎고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 혁명은 이른바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이다. 볼셰비키는 착취 계급의 제거를 통한 평등의 실현,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지배, 생산수단의 공유화, 상속제 폐지, 중앙기획경제 등 사회조직과 운영의 모든 층위에서 서유럽 국가들의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목표를 내걸고 출발했는데, 그런 사회주의 사회가 과연 이 지구상에, 구체적으로 러시아 땅에,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20세기 전반의 유럽인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유럽인들이 오웰의 독자, 곧 「동물농장」의 일차적 독자이며, 그들이 갖고 있던 관심과 그들이 이미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시대 상황이 「동물농장」의 당대적 문맥이다. 그러므로 「동물농장」이 나왔을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동물농장>을 세운다는 이 이야기에서 인간이 누구이고 동물이 누구인지, 동물 중에서도 동물공화국이 지배하게 되는 똑똑한 돼지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독재와 나폴레옹은 누구이며 그와 경쟁하다 쫓겨나는 스노볼은 또 누구인지 등등을 판별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미 소비에트가 소멸하고 없는 20세기 말 이후의 독자들, 특히 스탈린 시대의 정치 현실을 경험으로써가 아니라 역사 기록과 증언들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현대 독자들에게는 「동물농장」의 풍자 문맥이 반드시 그리 자명하지 않다. 그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사 「동물농장」의 이야기 세계와 그것의 시대적 문맥이 된 현실관계 사이의 연결 관계를 1 대 1로 표시하면 이러하다.(...)(상단그림 참조)

 

우화로 읽었을 때의 「동물농장」은 특정의 풍자문맥과 연결된 「동물농장」과는 다른 의미론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우화로서의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체제라는, 한 시대의 권력 형식만을 재현 대상으로 하는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이를테면 나폴레옹은 반드시 스탈린을, 돼지들은 반드시 볼셰비키를 지시하는 것으로 파악될 필요가 없다. 부패한 독재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고 권력형 돼지들도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은 모든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독재자의 알레고리이고 돼지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교활한 정예주의 권력집단의 알레고리이다.(...)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는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소비에트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

「동물농장」이 나왔을 당시 좌파 일각에서는 오웰을 참을성 없는 인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러시아 사회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힘들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과정의 것이 아닌가, 러시아 사회주의는 아직도 투쟁의 단계에 있는데 오웰은 그 러시아를 향해 성급하게 낙원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오웰은 스탈린 독재라는 사례에만 근거하여 소비에트 체제의 미래를 전면 부정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주의 자체의 미래에 대해서도 결국은 부정적 종결부호를 미리 찍어 놓고 있지 않은가, 그의 작업은 결과적으로 반사회주의 정치세력을 돕는 것이 아닌가-이런 지적과 불만들이 오웰을 향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 종류의 비판들은 대체로 오웰의 의도는 이해하면서도 그의 작업 수순만은 환영할 수 없었던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의 오웰에 대한 평가와 시각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 오웰의 논의는 상당히 다른 논리에 입각해 있다. 러시아 사회주의는 독재와 전체주의로 타락했고, 그 타락을 막지 못한 체제로부터 사회주의는 다시는 회생할 수 없다-이것이 오웰의 논리이다. 오웰에 대한 과거의 비판적 평가들과 오웰의 논리 사이에서 사려 깊은 판단을 행사할 책임은 독자의 몫이다. 지금의 역사 단계에서는 누구도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해 어떤 성급한 선언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소비에트 체제가 궁극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만은 이미 그 체제의 소멸이 증거하고 있다. 오웰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 소멸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미쁨책방 이야기☆

짧고 간결하여 쉽게 읽히지만, 작품 해설에서 담고 있는 상세한 내용처럼 그 내막은 깊고 강렬한 울림이 있다.

정치적 경향, 사회적 이념. 이러한 것에 문외한인 나이기에 작품 해설처럼 역사적 사건들과 결부시켜 그 의미를 다 이해하긴 조금 어려웠지만 내 나름대로의 감상은 이렇다.

 

어떤 사회 체제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등하며 존엄성을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는 우월성을 추구하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세력이 등장한다는 것. 또 그들과 결탁하여 그 세력을 자신들에게로 확장시키는 무리들이 생기고 그 억압 혹은 불평등 속에 반란과 저항을 일으키는 집단의 생성.

이러한 구조는 어떤 시대를 불문하고 그 모습만 조금 다른 뿐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하여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리라.

이러한 인간 사회의 불멸의 양극성 통해 결국 인간인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승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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