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 1. 달콤한 생활?
P.9
아직 신혼인데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서른두 살의 회사원 다나카 준이치는 열여덟 살에 도쿄에 올라온 후로 내내 혼자 살았다.(...)
그런 생활에 아내라는 다른 인간이 들어왔다. 두 달 전에 마사미와 결혼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말 안 해도 밥이 차려지고 목욕을 하고 나오면 갈아입을 속옷이 준비되는 것에 감동해 결혼 생활이란 참 좋은 거구나 하는 푸근한 기분이었는데, 허니문 기간이 지나자 조금씩 답답함을 느끼게 됐고 속도 안 좋아져 툭하면 설사를 했다. 자신이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말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아무튼 앨범 한 권을 잃어버린 정도의 상실감은 있었다.(...)
P.58
"밤참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더니 자기는 그걸 본 순간 뜨악한 표정을 짓더라. 쉬는 날 쿠키를 구워도 자기는 별걸 다 만든다며 질린 듯한 눈빛을 하고. 이 남자는 싹싹한 마누라가 귀찮은 건가 싶어서 매일 고민했어."
P.61
"그 부장님이 이런 말도 했어. 부부 싸움을 한번 피 터지게 해 보라고."
"뭐, 정말이야?"
"부부싸움을 해서 서로의 감정을 다 토해내고 털어 버리래. 어차피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 말이지. 부딪치는 점이 반드시 있을 텐데, 그렇다면 하루빨리 부부싸움에도 익숙해지라는 거야."
P.64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뭔가가 풀려 간다.
불쾌감은 없었다. 오히려 기분 좋은 흥분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 부부 싸움은 그 후로도 한 시간쯤 계속되었다.
이 짧은 단편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아마도 결혼을 통해 서로가 알지 못했던 속마음, 입장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려는 시도의 중요성?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부부에 대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평범한 부부의 삶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좀 더 근접한 답일 것 같다.
여자의 입장에서 글을 보니 조금은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저녁을 짓는데 남편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퇴근 후 늘 집 앞 커피숍에 들렀다 퇴근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거짓말했다. 또한 남편은 혼자서 오래 살기도 했고 자신의 직장 관행과 비추어, 아내가 일을 그만둔 게 못내 아쉬운지 꼬박꼬박 챙겨주는 밥도 부담스러워한다.
남편의 마음도, 아내의 마음도 모두 이해하지만 왠지 난 아내의 마음이 아파 보인다.
결국,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부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전투(?)의 숙명을 유쾌하게 그려낸 것이리다. 난 그 치열한 전투 속에서 서로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인연을 만나는 것도 어쩌면 행운이라 생각한다.
전투 끝에 상처만 남긴 쇼윈도 부부들도 많지 않은가.
● 2. 허즈번드
P.91
"그건 그렇고, 혹시 당신만 괜찮다면 도시락을 싸 줄까 하는데."
메구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낮에 생각한 일이다. 만약 점심을 같이 먹을 상대가 없다면 혼자서 사원 식당이나 바깥에 있는 음식점에 가야 하니 즐거운 시간이 아닐 것이다.
"어, 당신이야말로 괜찮겠어"(...)
슈이치는 정말로 반색하는 눈치였다. 그렇구나......, 점심을 혼자 먹는구나. 적어도 특정한 그룹의 일원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천진하게 웃는 남편이 가엾게 여겨졌다.
P.103
상사에게 혼나고 있지 않을까. 거래처 사람을 화나게 하지 않았을까. 동료들에게 험담을 듣고 있지는 않을까. 여사원이 심술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그럴 때마다 소프트볼 대회에서 씁쓸하게 웃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메구미는 시장을 보러 가는 길에 구인 정보지를 집어 와 출산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겨우 어린이집 비용이나 감당할 정도의 저임금 일자리뿐이라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만다.
세상 참 만만치 않다. 금융 위기로 대기업 파견 사원 해고가 속출했을 당시 근로자의 자기 책임론을 외치는 지식인이 많았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당신들 왜 그렇게 정이 없어?'라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P.113
"도시락이 맛있어서 일이 잘되고, 그래서 부장님에게 칭찬 듣고, 그렇지는 않아?"
"하하, 그런 일은 없는데."
슈이치가 웃는다. 표정 끝에 약간이 딱딱함이 있다. 역시 일은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남편은 여전히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이다.
P.115
그렇지, 덮밥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네.(...)
메뉴가 줄줄이 떠오른다. 답답하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행복하다고까지 한다면 살짝 과장이겠지만, 메구미는 지금 자신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간 속에 있다.
직장에서의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하고 태연히 억누르는 가장의 모습이 쓸쓸하고 고독하게 전해진다. 하지만 아내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기에 자신만의 방식(도시락 싸기)으로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며, 그 무게감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준다.
인생이란, 어쩌면 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 따듯한 '마음 한 스푼'이 더해진 온기로도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 에리의 4월
p.190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이혼하려는 모양이다.(...)
"어떠냐. 히로시랑 얘기는 잘 나눠 봤니? 너. 최소한 슈헤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앞으로 3년이야. 아이 생각만 해라. 그다음에는 너희 부부 마음대로 해도 엄마가 반대하지 않으마."
고등학생인 주인공 에리는 우연히 할머니를 통해 엄마, 아빠가 이혼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을 확인하기까지 친구들에게 이혼에 대해 물어보며 전전긍긍하게 되고, 결국 엄마에게 확인해보기로 마음먹는 과정을 그렸다. 짧은 단편이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겪게 되는 혼란 그리고 그것을 부모의 삶으로 조금씩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이혼으로 방황하고 고민하는 많은 가정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부부의 세계'라는 요즘 열풍인 드라마에서의 '준영'이의 모습도 교차된다.
부부의 삶을 인정하면서도 원망과 애정을 동시에 갖는 양가감정을 겪어 내야만 하는 이혼 가정 아이들의 모습이 짠하게 전해진다.
● 남편과 UFO
p.211
"고마워, 알려 줘서. 내가 전화했다는 거, 우리 남편한테는 비밀이야."
"응, 알았어. 회사에서도 내 나름대로 돕도록 해 볼게."
전화를 끊고나자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쓰오는 힘겹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걸 가족에게 숨기고 아무 일 없는 척 시치미를 떼다가 끝내는 UFO를 보게 된 것이다. 도망칠 수도 없고 내던질 수도 없는 다쓰오는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 다쓰오 언제부턴가 UFO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첨엔 웃어넘겼지만, 매일 퇴근길 UFO를 잘 볼 수 있는 스폿을 찾고 또 대화까지 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아내 미나코는 남편의 정신 이상 신호를 감지한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의 남편은 온전한 상태로 버티기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다.
아내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현실이야 어떻든 남편을 회사에서 구해내기로 말이다. 글의 말미에서
당신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니 남편이 쓰러졌다고 단호하게 말하겠다는 아내의 용기가 가슴 뭉클하다.
어쩌면, 이러한 아내의 행동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세상은 현실을 핑계 대며 더 소중한 것을 잃어가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너무 뒤늦게 깨달아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족이란 존재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 귀성
p.233
"처가에도 갈 거지?"
"그쪽은 생각 중이에요. 장모님이 양쪽 다 가기 힘드니 무리할 거 없다고 하셔서요."
"그건 안 된다. 왔다 갔다 하려면 좀 힘들겠지만 가려면 양쪽 다 가야지."
p.257
그러고 보니 삿포로 집에서는 사요가 무척 많이 먹었다. 어머니가 자꾸 접시에 덜어 주니 남길 수도 없어 기를 쓰고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귀성은 여러모로 부부 쌍방에게 큰 일이다.
p.264
"사요는 도쿄사람 다 됐더라. 좋은 회사에 다니고, 외국에 나가고 싶어 한다는 말도 들리고, 맞벌이도 좋지만 부모님께 손자는 안겨 드려야지."(...)
사요는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보나 마나 속으로는 무슨 헛소리냐고 하고 있을 것이다. 사요로서는 귀성해서 가장 우울한 시간이다.
p.269
"응. 재미있었어. 아버님이 바둑 두시면서 나직나직하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어. 우리 아들놈이 좀 천방지축이니 잘 부탁한다. 그러기도 하시고."
"아니, 아버지가 그런 말을 다 했어?"
결혼하고 처음 맞는 추석 휴가에 고이치와 아내 사요가 양쪽의 고향을 번갈아 찾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다. 서로의 가족, 친척, 가풍 또 그 속에서 전해지는 불편함과 어색함 그리고 가족이 되기 시작하면서 전해지는 배려와 따스함까지 잔잔하게 그려내었다. 결혼의 문은 또 다른 인생의 거대한 시작일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가 되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예쁘다
● 아내와 마라톤
p.294
야스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미가 일을 다시 시작한다 한들 수입은 남편에게 한참 못 미칠 것이다. 주부로 지낸 세월이 오랜 터라 일에 대한 스킬도 없다. 두 아들은 이제 엄마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토미는 매일 무슨 생각을 하며 달리는 것일까.
p.314
사토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혼하고 내내 함께 걸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 혼자 앞질러 가게 되었다. 그녀가 자기만 내버려졌다는 생각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아내 사토미는 달리기를 시작한다. 남편 야스오는 그런 아내에게 어느 순간 측은한 마음을 느끼며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마라톤 참여를 권유한다.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엄마의 마라톤을 응원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으로서의 지지와 공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내에게도 꿈이 있었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한 뒤에 찾아오는 현실적 박탈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을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묵묵히 자신을 희생한 엄마에게 응당 가져야만 하는 의무일지도 모른다.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마라톤에서 힘들게 완주해 들어오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 미쁨책방 이야기 ☆
오쿠다히데오 소설은 예전에 '공중그네'를 읽은 적이 있는데, 오래전이라 내용이 가물거리지만 기억에 남는 건 작가가 글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썼다는 것이다. 수년 만에 읽은 같은 작가의 이 책 역시 너무나 유쾌하며 그 속에서의 감동까지 전해진다는 점에서 역시 '오쿠다 히데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가족의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가족'이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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