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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_프랑수아즈 사강

☆북리뷰

by mibbm_soo 2024. 2. 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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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p.85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 스무 살 때 그랬던 것 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 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p.110

'남자들은 뻔뻔스러운 데가 있어.' 폴은 별다른 유감없이 생각했다. '날 완전히 믿는다니. 완전히 믿는 나머지 날 속이고 혼자 내버려 두다니.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참 대단해.'

p.125

"나는 외로웠어요. 그리고 아주 기묘한 상태에 놓여 있었어요. 물론 그렇더라도 당신에게 '빨리 돌아와요.'같은 구절은 쓰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건 맞아요!"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몽이 와 있었고 그녀는 그가 거기 와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 외롭지 않았던가! 로제는 영화에 미친 젊은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로제와 그녀 사이에서 그 일이 한번도 언급된 적은 없었지만, 로제는 어느 정도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평소처럼 그녀를 이해시키기엔 너무 잡다했다.

p.160

많은 사람들이, 특히 자신의 친구들이 어조를 달리해 "혹시 사실이야, 폴? 이라고 하며 이 일에 대해 물어올 것이라고 폴은 생각했다. 사람들의 험담으로 앞으로 강조되어 드러날 시몽과의 나이 차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모욕감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신이 나서 떠들어 댈까. 그녀 자신은 스스로가 늙고 지쳤다고 생각되어 약간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뿐인데, 그들은 그녀가 젊은 남자나 좋아한다며 요란스럽게 입방아를 찧어 대리라. 사람들이 자신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동시에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구역질이 났다. 그런 경우를 수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로제에게 배신당하자 그녀는 "가엽은 폴."이라고 불리는 한편 "지독히도 독립적인 여자."라는 말도 들었다. 그녀가 젊고 미남이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남편 곁을 떠났을 때에도 사람들은 비난과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번에 야기될, 경멸과 시샘이 뒤섞인 그들의 반응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리라.

p.201

"당신과 떠날 수 도 있어. 만약 당신이······(그녀는 "만약 당신이 나만을, 우리만을 생각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정말 필요로 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당신은 혼자 가도 상관없고, 아니면······나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가도 괜찮잖아."

p.217

시몽은 여자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그녀는 나이 차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십 년 뒤에도 그가 여전히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십 년 뒤에 그녀는 혼자가 되거나 로제와 함께 지내게 되리라. 그녀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집요하게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거듭 속삭이고 있었다. 스스로도 속수무책인 그런 이중성을 떠올릴 때면 시몽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배가 되었다. "나의 희생양. 나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나의 귀여운 시몽!"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끔찍한 쾌감을 경험했다.

이 '불가피함'에는 응분의 결과가 따르리라. "어째서 당신은 나보다 로제를 더 좋아한다는 거지? 그 무심한 사내의 무엇이 내가 당신에게 매일 바치는 이 열렬한 사랑보다 낫다는 거지? 같은, 언젠가 시몽이 그녀에게 던질 질문들, 고통당하는 입장에서 응당 제기할 만한 질문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로제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지레 겁에 질렸다.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럽고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p.234

그는 그녀에게 설명했다. 여자들을 조심했어야 했다고, 자신이 경솔했다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임을 잘 알고 있다고. 그는 그녀가 줄곧 자신만을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다. 그녀는 좀 더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싶기도 했다.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

p.237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미쁨책방 이야기

짧은 소설이지만 그 감정적 울림은 상당한 소설이었다.

39살의 폴, 그의 오래된 연상의 연인 로제. 언제나 처럼 폴은 로제의 시간에 맞춰 일상을 움직인다. 자유분방한 로제는 언젠가부터 거짓말로 다른 여성들을 몰래 만나기 시작하고 이것을 알게 된 폴은 알면서도 묵묵히(?)그 자리를 그저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일상의 시간에 14살 연하의 시몽이 눈 앞에 나타나 열정적인 구애를 펼친다. 로제 옆에서는 늘 허전함과 외로움을 안고 살았던 그녀는 시몽을 통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만 어쩐지 로제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시간이 흐른 후 로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과하고 폴 역시 로제에 대한 마음을 전하며 시몽과의 이별을 택하였지만 결국 로제와 폴은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와 또 다시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듯한 암시적 결말을 맞는다.

사랑은 늘 어긋난다. 늘 내 곁에 있어주길 원하는 그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져 날 혼란스럽게 만들고 나를 열렬히 원하는 누군가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현실적 제약으로 선뜻 깊은 관계를 맺기에는 망설여지게 된다. 또 어떤 인연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결국 얼마가지 못해 다시 서로를 괴롭히는 상태로 복귀한다. 또는 수년의 만남 동안 쏟아부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결국 헤어짐조차 두려운 상황 속에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

결국 어떤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더라도 관계 속 매너리즘은 찾아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희생양이되고 누군가는 가해자가 된다. 또 그 가해자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애처로운 피해자일 것이다.

사랑의 덧없음에 대한 통찰과 간결하면서도 단단한 문체가 기억될 작품이다.

(p.s 자신을 지키며 사랑하는 연습. 그것이 결국 서로를 지키는 힘이란 것을 이제는 이론으로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랑은 배신당하기 가장 쉽다. 나는 그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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