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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싫다_손수호

☆북리뷰

by mibbm_soo 2023. 5. 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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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4

의료사고 피해자, 사기 피해자, 성범죄 피해자, 산업재해 피해자 등등. 우리 주변에는 피해자가 참 많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변호사에게 의지하고 의존한다. 의뢰인이 지치면 소송도 중단된다. 억지로 끌고 가도 원하던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변호사는 강인해야 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강건한 모습을 보이면서 의뢰인이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줘야 한다. 그게 임무다.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먹고산다. 그러니 당연히 잘 해내야 한다.

하지만 무섭다. 변호사도 사람이다. 후천적 법조인이다. 변호사는 그저 자격이고 수많은 직업 중 하나다. 과한 사명감은 좋지 않다. 무엇보다 변호사 자신을 지치게 한다. 내가 지치지 않아야 의뢰인도 지치지 않는다.

사건도 무섭고, 상대방도 무섭고, 의뢰인도 무섭고, 갑자기 울리는 휴대전화 진동음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건 이 일을 앞으로도 한참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치지만 힘내야 한다. 적어도 이 일하면서 돈 버는 동안은.

p.260

이혼을 비롯한 가사 소송을 다룰 때마다 늘 가사소송법의 첫 번째 조항을 기억하려 한다.

가사소송법 제 1조 | 목적
이 법은 인격의 존엄과 남녀평등을 기본으로 하고 가정의 평화 및 친족 간에 서로 돕는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가사에 관한 소송과 비송 및 조정에 대한 절차의 특례를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솔직히 친족 간 서로 돕는 미풍양속이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격 존엄과 가정 평화의 중요성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히 변호사로서 가사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정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어큰 보람을 느낀다. 문제를 덮고 외면하고 무조건 참으라고 강요해선 가정에 평화가 올 수 없다. 문제를 찾아내서 도려내고 상처를 소독하고 새 살이 올라올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당장 아플 수 있어도 그래야 진정한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변호사로 생활하면서 많은 이혼 사건을 다루게 될 거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스트레스와 부담감에서 촉발된 심적 고통에 시달릴 게 뻔하다. 사실 이혼 소송에서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심리상담사, 동기부여 강사, 말동무 역할까지 담당하곤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힘들 대마다 가사소송법 제1조를 다시 떠올리겠다. 인격의 존엄과 남녀평등을 기본으로 한 가정의 평화. 변호사는 강한 의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p.287

'에필로그 中'

다양한 사건을 다뤘다. 통쾌한 사건보다 어려웠던 사건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밤잠 못 자고 고민한 사건, 상대방이 거칠게 저항한 사건, 노력보다 성과가 적은 사건이 힘들었다. 하지만 가장 괴로운 건 따로 있다. 분명 처음에는 우리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적이 되어버린 사람. 누구보다 더 악독하게 나에게 달려든다. 이렇게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본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

처음 의도와 달리 아주 진한 하소연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 사실 변호사는 약해 보이면 안 된다. 힘들어도 티 내면 안 된다. 그 순간 누군가 도전해온다. 안팎이 적이다. 그래서 이런 한탄과 투정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털어놓고 있다. 인생의 반환점 근처를 돌면서 앞으로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몸이 힘든 건 참으면 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래서 회복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고 읽는 지금이 회복의 시간이다. 바로 여러분들이 지금 나를 회복시켜 주고 있다.

이제 결론이다. 솔직히 사람이 싫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좋아질지도 모른다. 세상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미쁨책방 이야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돈을 벌기 위한 일에는 결코 '사람'이 빠질 수 없고, 그 속에서 '사람'에 대한 회의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이 갔던 책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아직 버리지 못해서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흡한 지식이나마 사람에 대한 공부를 조금씩 하고 책을 읽고 또 사람의 다양성에 대해서 인지하고 수용하려 노력하지만 마음속 깊은 한편에는 인생의 피로함과 고독함 속에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 생각을 어리석게도 하게 될 때가 있다.

신뢰와 믿음을 가졌던 누군가로부터 혹은 호의를 베푼 누군가로부터 부당하거나 무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등등의 피드백을 받게 되면 상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돌아보면 나 역시 때론 이기적인 순간이 있었고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만큼의 감정을 주지 못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경험이 있다.

유명한 연애 프로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나온 '지독한 먹이사슬'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경우도 경험한다.

아마 이것이 인생이 주는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그 먹이사슬 안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발동되고 그러다 보니 서로가 믿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사람이 싫어지는 상황이 발생된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이 세상 속에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임을 알면서도 저마다 속내를 감추고 힘겹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선의와 진심을 베풂으로써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삶의 과제에 직면해야만 '나에게 맞는'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맞는 방법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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