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섬세한 문장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가 공지영과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집필한 소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문화와 언어의 차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발생하는 오해를 소재로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여성인 홍이와 일본 남성인 준고, 이 두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츠지 히토나리는 남자의 시선으로, 공지영은 여자의 시선으로 내면과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어 하나의 사랑으로 완성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눈보라처럼 벚꽃잎이 날리던 봄날, 도쿄의 이노카시라 공원 호숫가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느끼고 젊은 감정으로 서로에게 정신없이 빠져 든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와 사소한 오해, 대화 부족 등으로 홍이는 준고와 살던 집을 나오게 되고 둘은 헤어지는데….[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p.104
결혼,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친구들은 꽃잎이지듯 하나 둘씩 미혼 딱지를 떼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결혼이라는 것만큼 이미 해본 사람은 하지 말라 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기어이 하고 마려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면 그토록 꼼꼼히 리뷰들을 챙기면서 결혼이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의 리뷰도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아플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본능은 다시 올라온다. 두려움과 불안, 절망감을 맞보고서도 사랑을 다시 갈망하는 것은 그것을 통한 치유와 행복이 주는 힘을 알기 때문이겠지. 사랑에서 만큼은 때론 인간의 기억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느낀다.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출처 입력
p.109
나는 정원의 의자에 앉았다.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p.112
나는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온 우주의 풍요로움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문제는 사랑이 사랑 자신을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속성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빛이 내 마음속에서 밝아질수록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나만은 다를 거라고, 우리의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것 자체도 사랑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라고 지희는 분석하곤 했었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고, 또 영원을 믿는 것 자체가 사랑의 속임수라해도 또 그 빛이 퇴색되어져 간다해도 정말 나만의 사랑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마음은 그래서 늘 고독한지도 모르겠다.
출처 입력
p.125
"여자들은 말이야. 너무 매사를 사랑에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어.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순간, 남자는 떠나가는 거야. 남자의 본성은 사냥꾼이거든. 잡아 놓은 짐승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도망 다니는 언덕 위의 나랜 사슴을 쫓아가고 싶어하거든. 우리 여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그런 본성을 인정하고 쿨해지는 거야. 그래야 남자들의 사냥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
지랄같은 남자들의 본성. 아프다 참.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남자를 찾아헤매는 것이 여자의 본성인건가.
출처 입력
p.130
홍아. 때로는 봄에도 눈이 내리고 한겨울 눈발 사이로 샛노란 개나리 꽃이 저렇게 피어나기도 하잖아. 한여름 쨍쨍한 햇살에도 소나기가 퍼붓고, 서리 내리는 가을 한가운데서도 단풍으로 물들지 못하고 그저 파랗게 얼어 있는 단풍나무가 몇 그루 있는 것처럼, 이 거대한 유기체인 자연조차 제 길을 못 찾아 헤매는데, 아물며 아주 작은 유기체 인간인 네가 지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하지는 마.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 하며 몸부림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괴로워 하지 마.
그냥 시간에게 널 맡겨봐. 그리고 너 자신을 들여다봐. 약간은 구경하는 기분으로 말이야. 네 마음의 강에 물결이 잦아들고 그리고 고요해진 다음 어디로 흘러가고 싶어하는지,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봐. 그건 어쩌면 순응 같고 어쩌면 회피 같을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응일지도 몰라. 적어도 시간은 우리에게 늘 정직한 친구니까. 네 방에 불을 켜듯 네 마음에 불을 하나 켜고······. 이제 너를 믿어봐.
☆미쁨책방 이야기
홍이와 준고는 결국 긴 세월을 돌고돌아 다시 만나게 되고 인연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사랑하며 겪는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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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기, 상황, 환경..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사랑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마음.
그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의지하며 걸어가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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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사랑의 속성이 비록 '영원하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또 서로에게 그럴 수 있는 사랑을 꿈꾼다. 조금은 고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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